우리 소는
어디 있소?

Edelkochen Essay #11.

한우다이닝울릉, 김인복 - 우리 소는 어디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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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지 송아지
얼룩 송아지
엄마 소도 얼룩소
엄마 닮았네

박목월 작사, 손대업 작곡의 동요. 1948년

한우 (일반 한우)

몸 전체가 누런 황갈색을 띔

칡소 (칡한우)

짙은 갈색바탕/검은 줄무늬를 가짐

흑우 (흑한우)

몸 전체가 흑색을 띔

백우 (백한우)

몸 전체가 흰색을 띔

[출처] 한우자조금관리위원회

사계절이 뚜렷하고 산야가 많은 환경에서 농경 생활을 이어오던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한우를 즐겼습니다. 주로 농우로 사육하던 한우는 농기구의 발달과 한우 식육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점차 음식으로 그 가치를 높여가기 시작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규모로 사육하지 않고 일정 면적에 적정 도수만 사육해 최적의 환경에서 관리되고 있어 최고의 품질을 자랑합니다.

우리민족과 함께해온 한우의 유래를 살펴볼까요.
선사 시대 출토된 소 뼈의 연대기를 추적해 봤을 때, 구석기 시대부터 들소, 야생소, 물소 등 가축화되기 이전의 야생소가 다양하게 서식하고 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가축으로 키우기 시작한 청동기 시대부터는 여러 유적지에서 소와 관련된 뼈가 출토되고 있습니다. 이는 한우가 우리나라 민족사와 계속 함께 하였다는 사실을 반증합니다.

이처럼 민족과 함께 해온 한우는 단순히 농사용으로만 이용된 것이 아니라 생활 곳곳에서 다양하게 활용되어 왔습니다.
소의 부산물은 의복이나 약재, 장식용 등으로 쓰였으며 또 국가 간 외교 선물이나 하사품, 군사용으로도 이용됐습니다.

한우는 기원전부터 우리나라에서 사육되어 오던 역용종 이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연구에 의하면 한우 (Bos taurus Coreanae)는 유럽원우(Bos primigenius)와 인도원우(Bos indicus)의 혼혈종에서 기원합니다. 북부 중국, 만주를 거쳐 한반도에 옮겨온 후 다른 품종과의 교류 없이 순종번식에 의하여 오늘에 이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참고 - 국립축산과학원 축종별품종해설)

오늘날, 한우는 일반적으로 몸 전체가 황갈색을 띄고 있는 황소를 한우라고 일컫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누런 황소 뿐 아니라 모색이 다른 여러 종류의 전통소가 있었습니다.
1399년 발간된 우의방 (牛醫方)에 기록된 ‘상우형상 및 모색론’에 의하면

<소의 모색은 아주 다양하다. 피모가 누런 황우(黃牛), 황소 이외에 검은 흑우(黑牛), 얼룩의 리우(离牛), 얼룩소로 일명 칡소, 흰색의 백우(白牛), 검푸른 청우(靑牛), 사슴 같은 녹반우(鹿斑牛) - 이른바 점박이소…>

등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서기 357년 축조된 고구려 고분벽화 안악 3 호 분에는 검정소, 누렁소, 얼룩소가 외양간에서 먹이를 먹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고려 시대에도 우리나라 한우의 종류는 황소, 칡소(얼룩소), 흑소, 백우 등이 존재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조선시대와 근대에 들어서도 김홍도 민화 ‘밭갈이’, 동요로 널리 알려진 박목월의 ‘얼룩송아지’, 이중섭의 ‘황소’, 정지용의 ‘향수’ 에 등장하는 얼룩배기 황소까지 우리 조상들의 삶과 풍속에 새겨진 그 영향력이 보통이 아님을 알 수 있지요.

고구려 안악 3호 분 벽화 (외양간)

이중섭 (황소) 1953년작

이러한 우리나라 전통소가 황소만 한우로 규정된 게 어떤 이유이냐, 일제강점기 일제는 한우 심사 표준을 정하면서 ‘표준 모색을 적갈색으로 한다’라고 거칠게 정리합니다.
이때부터 우리나라 소 중 적갈색 소만을 조선우로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흑우나 칡소를 일본으로 반출해 가기도 했지요. 메이지 유신 이후부터 소고기를 식용으로 먹기 시작한 일본은 이때 반출한 우리 소를 ‘화우(和牛)’, 일명 와규(wagyu)를 계량하는데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모색 일체화 정책을 폄에 따라서 일본에서는 ‘화우 (和牛)’ 흑우를, 우리나라는 황소를 한우 ‘조선우’라고 명명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 1910년도부터 1945년도까지 무려 150만 마리의 우리 전통소를 공출해 나갔다고 하니 규모를 떠나 세계에 자랑하는 일본 와규의 이면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 참고

이런 아픈 역사 속에서 1945년 국가가 독립을 맞이했지만 많은 영역에서 그러하듯 그 당시 자료, 풍토를 그대로 이어받아 1970년 한우 심사 표준을 개정하면서도 ‘한우의 모색의 표준을 황갈색으로 한다.’라고 정하게 됐고 그러한 연유로 지금까지 누렁소만 한우로 굳어지게 됐습니다.

때문에 흑소나 칡소 같은 모색의 소는 우시장에서 거래 조차 되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불행한 한우의 역사를 지나 우리 전래의 전통소를 되찾아야 한다는 운동이 일어나 제주에서는 천연기념물 제460 546호로 제주 흑소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고 보호하고 있으며, 울릉도에서 보존되고 있는 칡소는 충청, 강원도 고성 등 각 지역에서 복원, 보존 사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이러한 각계의 노력이 좀더 많아질 때, 우리 한우의 전통성을 되찾는 것은 물론 K-FOOD, KOREAN-BBQ 문화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수 있겠지요. 변하지 않는 가치, 그 맛의 영역에서 일본의 와규를 뛰어넘는 세계적으로 인정 받는 한우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 참고
일제 강점기인 1938년 일제는 한우심사표준을 정하면서 ‘표준 모색을 적갈색으로 한다’고 정하여 다양한 우리나라 소 중 ‘적갈색 소’만을 조선우(朝鮮牛)로
인정하기로 하는 한편 일본은 ‘흑색’을 기본으로 ‘화우(和牛)’ 일명 와규(wagyu)를 장려한다는 모색 일체화 정책을 폄에 따라 이렇게 되었다. 일제는 우리나라에서 흑우는 기르지 못하게 하는 정책을 펴고 1924년에 흑우 암소 125마리와 흑우 수소 50마리를 일본으로 가져가고, 1925년에는 암소 25마리, 수소 1마리를 가져갔다. 이런 아픈 역사 속에서 1945년 우리는 독립 국가가 되었음에도 우리 자신이 이를 그대로 이어 받아 1970년 한우심사표준을 개정하면서도 “한우의 모색은 황갈색을 표준으로 한다”라고 정함에 따라 누런 소만 ‘한우’인 것으로 굳어지게 되었고 기타 흑소 나 칡소 같은 모색의 소는 우시장에서 거래조차 되지 못하였다.

변하지 않는 ‘가치’에 대하여 -
한우다이닝울릉, 김인복